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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후세에 자기 개인의 인간성이 말살되고, '황제' 로만 남을 것을 걱정한 강희제

박신혜 2018. 10. 3. 01:18

네이버 아이디 신불해 (dhalsdn7) 님의 글입니다.


성조 강희제


 사람은 능력치 숫자로 이루어진 게임 속 캐릭터나 작가의 마음대로 굴러가는 등장 인물이 아니니, 각자가 가진 인간성과 매력, 장단점과 성격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인물이 너무나 유명한 역사적인 인물일 경우, '머리가 좋았다' '사교성이 있었다' '전쟁의 장군으로서 능력이 뛰어났다' '정치의 치국에 능했다' 등등 간략하게 한두마디로 그 입체적인 면모가 정해져 일관화 되는 면이 있습니다. 


 가령 어떤 사람이 화를 잘 내었다고 해도, 거기에는 또 말못할 개인의 미묘한 감정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후대에는 "화 잘내는 사람" 정도로만 기억이 될 테고...



 유럽의 경우 상대적으로 '황제' '장군' 이런면을 떠나 '개인' 으로서 시각을 다루는 기록이 어느정도 있다보니 더 입체적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세에서는 단편적인 이미지로 그 사람이 정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니, 중세나 근대 뿐만 아니라 기록이 풍부한 근현대 인물조차도 그런 '이미지' 로 인물이 잡히는것은 비슷하니 기록이 많다고 해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테고..



 하물며 동아시아, 그리고 오래전부터 절대적 왕권이 발달한 중국의 제왕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중국의 역사상 수많은 황제와 군주들이 있었지만, 그 거의 대부분은 '뛰어난 황제로서의 기록' '포악한 황제로서의 기록' '성격이 활달하여 적극적인 전쟁에 나섰던 황제로서의 면모' '꼼꼼하여 정치를 잘하는 황제로서의 모습' 등등 거의 몇가지 스테레오 타입으로 나눌 수 있을만큼 몰개성 합니다.



 그들 대다수는 개인적으로는 자신의 인간성을 내비친 경우가 많았겠지만, 후대에 볼 수 있는 역사적 기록은 존엄함과 위대함을 강조하는것이 보통이기에 그런 '황제' 아닌 '개인' 으로서의 감정과 인격은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리고, 그런 단순한 모습으로 남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면에서 볼때, 강희제가 남긴 상유(上諭)에서의 언급들은 다른 어떤 말들보다 와닿는 무엇이 있습니다. 강희제는 위대한 황제로 일컫어지지만, 그렇다고 감정과 분노, 고통스러워하고 의심하던 모습들이 없던 사람은 아닙니다. 인간이라면 그럴 수도 없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노력하면서 나아가려고 노력했을 뿐입니다. 


 아래의 상유는 1717년 12월 23일, 건청궁의 동난각에 여러 황자, 만한대학사, 학사, 구경, 침사, 과도관 등을 불러모은 강희제가 '생전' 에 반포한 상유 입니다. 중간에 조금 생략을 하겠습니다.








 "짐은 어렸을때, 하늘이 건강함을 주셔서 병에 걸린다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몰랐다. 올 봄에 병이 나서 비로소 머리가 어지럽고, 몸이 점차 쇠약해지는 것을 느꼈다. 올 가을에 변방 너머로 사냥을 나갔는데 몽골 지방의 기후와 풍토가 아주 좋아서 정신은 나날히 맑아지고 얼굴에 살이 올랐다. 매일 말을 타고 활을 쏘았지만 피곤하여 짜증나는 적이 없었다. 베이징으로 돌아온 뒤에는, 황태후께서 편치 않으셨으므로 짐은 낙담하여 어지럼증이 생겼다. 짐은 평소에 꼭 일러두고 싶은 말이 있었으므로, 특히 그대들을 불러모아 얼굴을 마주보고 상유를 내리노라."


(중략)


 "짐은 이제 칠순이 되었고 제위에 오른 지는 50여년이 지났다. 이는 모두 하늘과 땅, 조상들의 드러나지 않은 도움 덕분이었고, 짐의 보잘것없는 덕 때문은 아니었다. 짐은 어릴 적부터 책을 읽고 고금의 도리를 어설프게 나마 깨우쳤다. 무릇 제왕에게는 천명이 있어서 마땅히 장수를 누리도록 (천명을 받은 자는) 장수를 누리지 못하도록 할 수 없고, 태평을 누리도록 (천명을 받은 자는) 태평을 누리지 못하게 할 수 없다."


 "황제의 첫해로부터 지금까지 4,350여년이 흘렀으며 황제를 칭하였던 자는 300여명이었다. 그러나 진나라에서 분서하기 이전 삼대의 일에 대해서는 모두 믿기 어렵다. 시황제 원년으로부터 지금까지는 1,960여 년이 흘렀고 황제를 칭하면서 연호를 가졌던 이들은 모두 211명이었다."


 "그러면 짐은 어떤 사람인가?"


 "진한 이래로 황제 자리에 오래도록 앉았던 사람 중에서도 가장 오래도록 앉아있는 사람이다."


 "옛 사람 중에 자랑하지 않고 족함을 알고 그칠 줄 알았던 자만이 처음처럼 끝도 좋았다. 삼대 이후 제왕을 살펴보니 제위에 오래 있었지만 후세에 유조를 남기지 못한 분도 있고, 수명이 길지 못하여 세상의 질고를 알지 못한 분들도 있었다. 짐은 이미 늙었고, 제위에도 오래 있었으니 후세 사람들이 어떻게 평가할지 미리 알지 못하겠다. 또 눈앞의 일 때문에 통곡하며 눈물 흘리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먼저 붓 가는 대로 기록해 두었으나, 오히려 천하 사람들이 나의 고통과 슬픔을 알지 못할까, 그것이 두렵다."


 "옛날의 제왕들은 죽음을 꺼리는 일로 생각하여, 미리 준비하지 못하였으므로 그들의 유조를 살펴보면 제왕의 어투도 아니고, 마음 속에서 말하고 싶었던 진정한 바도 아니다. 이는 숨이 넘어가려는 찰나, 문신을 찾아 그들 마음대로 기록하게 하였기 때문이다."


 "짐은 그렇게 하지 않겠다. 이제 미리 너희들에게 짐의 진심어린 마음을 알리려 한다."


(중략)



 "옛날의 제왕 가운데 혹 수명이 길지 못하였던 자들에 대해 사론(史論)에서는 대게 너무나 방탕하고 주색에 빠졌기 때문이라고 평하였다. (그러나) 이는 모두 서생(書生)들이 참으로 순전하고 훌륭한 군주에 대해서라도 흠을 들추어 내려고 비평하기를 즐겨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짐이 옛날의 제왕들을 위해 변명하자면 천하를 다스리는 일이 너무 번거로우므로 힘들고 고달픈 바를 감당하지 못해서 (일찍 죽은 것)이다. 제갈량은 "죽을 때까지 온갖 정성을 다바쳐 나랏일을 돌본다." 라고 하였는데, 남의 신하로서 (이렇게 행한 자는) 오직 제갈량 한 사람뿐이었다. 그러나 제왕들의 책임은 막중하고 벗어날 수도 없다. 이를 어찌 신하들과 비교할 수 있을 것인가?"


 "신하들은 벼슬살이를 할 만하면 벼슬을 살고 그만둘 만하면 그만둔다. 늙으면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자손들을 돌보면서 유유자적하게 보낼 수 있다. 그러나 군주들은 평생토록 부지런히 수고하고 쉴 수가 없다. 순(舜) 임금과 같은 사람은 무위지치(無爲之治)하였다고 일컫지만, 남순(南巡)하다가 창우에서 죽었다. 우(禹) 임금은 손발에 못이 박히도록 수레를 타고 다니며(치수에 힘쓰다가) 후이지에서 죽었다. 이처럼 정사를 돌보는 데 힘껏 노력하고 두루 다니며 순행하여 한가로이 쉬지 않아으니, 어찌 무위청정을 숭상하여 자신을 돌보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주역의 돈 괘에 나타난 육효는 군주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으니, 이로부터 군주는 본래 편안히 쉬는 바가 없고, 은퇴하여 자취를 감출 수도 없음을 알 수 있다. 죽을 때까지 온갖 정성을 다바쳐 나랏일을 돌본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옛 사람들은 언제나 '제왕은 마땅히 일의 크고 중요한 부분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지고 세세한 부분에 대해서는 관심을 둘 필요가 없다.' 고 말해왔다. 그러나 짐의 생각은 그렇지 않다. 한 가지 일에 부지런하지 않으면 온 천하에 근심을 끼치고,한 순간을 부지런하지 않으면 천대, 백대에 우환거리를 남긴다. 작은 일에 관심을 두지 않으면 마침내는 큰 덕에 누를 끼치게 되므로, 짐은 매사를 꼼꼼하게 살펴 왔다. 만일 오늘 한 두 가지 일을 처리하지 않고 내버려 두면 내일은 처리해야 할 일이 한 두 가지 더 많아진다. 내일도 다시금 편안하고 한가롭기만을 힘쓴다면 훗날에는 처리해야 할 일이 더욱 많이 쌓이게 된다."


 "황제가 처리해야 할 일은 지극히 중요해서 미루어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짐은 크든 작든 모든 일에 관심을 쏟고 있다. 상주문에 한 자라도 틀린 것이 있으면 반드시 고쳐서 돌려준다. 모든 일을 소홀히 못하는 것은 짐의 천성이다. 50여 년 동안 문제가 심각해지기 전에 미리 손을 써왔고, 천하의 많은 백성들도 짐의 덕을 기려왔으니 사소한 일에는 관심을 둘 필요가 없다는 말에 어찌 집착할 수 있겠는가?"


(중략)


 "짐은 어렸을 때 책을 읽으면서 주색을 조심해야 하며, 백성들을 보호해 주어야 한다는 점을 깨우쳤다. 그래서 늙어서도 병에 걸리지 않았으나 강희 47년(1708년)에 큰 병에 걸린 뒤에는 정신이 많이 상하여 이전만 못해졌다. 하물며 매일 돌보아야 할 정사가 있고 이 모두를 결재해야 하였으므로 정신은 날마다 밖으로 빠져나가고 때로는 안에서도 닮아 없어지는 것을 느꼈다. 앞으로 혹시 변고를 만나 일시에 한마디도 못하게 되어 짐의 진정한 뜻을 밝히지 못하게 된다면 어찌 안타까운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정신이 맑은 때에 미리 하나 하나 언급하여 짐의 일생에서 중요한 일들을 모두 밝혀 놓으면 어찌 유쾌한 일이 되지 않겠는가?"


 "사람의 삶에는 반드시 죽음이 뒤따르니, 이는 주희가 '천지가 순환되는 이치는 낮이 끝난 다음에 밤이 오는 것과 같다.' 라고 한 것과 다를 바 없다. 공자도 '만족하면서 살고 하늘의 뜻을 기다려라.' 고 하였다. 이는 모두 성현의 말씀이니 어찌 짐이 노쇠함과 죽음을 두려워하겠는가?"


 "요즘에는 많이 병들고 정신이 흐릿하여 육신도 쇠약해져 움직일 때 부축해 주지 않으면 걷기도 힘들다. 이전에는 마음을 쏟아 천하를 다스리는 일을 짐의 업무로 생각하고 그러다가 죽더라도 대수롭지 않다고 여겼다. 이제 짐은 병들고 두려움도 많아지고 건망증도 심해져, 옳고 그른 것을 거꾸로 판단하여 천하를 다스리는 일에 혼란을 가져올까 두려워하고 있다."


 "짐의 마음은 천하를 보살피는 데 다 쏟아부었고, 정신은 온 세상을 다스리느라 흩어져 버렸다. 몸은 쇠하고 정신은 멍하여 몸을 지켜 주지 못하고, 마음은 양분을 공급하지 못하고, 눈은 원근을 분간하지 못하며, 귀는 옳고 그름을 가리지 못하며, 먹는 것은 적은데 할 일은 많으니 어찌 오래 지탱 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평화가 오래도록 지속되어 사람들의 마음이 게을러지면, 복이 다하고 화를 부르며 평안함이 떠나고 쇠퇴함이 찾아온다. 군주가 자질구레한 일에만 정신을 쏟으면 신하들이 게을러져 만사가 뒤틀리게 된다. 그 다음에는 반드시 하늘의 재앙과 사람의 해악을 불러오고 마침내는 이 두가지가 함께 닥쳐 온다. 그렇게 되면, 비록 마음으로는 무언가를 하고 싶어도 정신력이 미치지 못하게 되니, 후회해도 어쩔 수 없다. 떨쳐 일어나고자 해도 그러지 못하고, 침상에서 신음하며 죽더라도 눈을 감지 못하니, 아직 죽지 않았다 한들 어찌 통탄스럽지 않겠는가?"


 "옛날 양 무제는 나라를 세운 영웅이었지만 늙어서 후경에게 핍박받아 화를 당하였다. 수문제 역시 왕조를 처음으로 연 군주였지만 그 아들 양제의 악함을 미리 알 수 없었으므로 마침내 평안한 죽음을 맞이하지 못하였다. 또 독이 섞인 단약을 먹고 자살하거나, 떡을 먹고 중독이 되거나, 송태조가 멀리서 촛불 그림자를 본 것 따위는 기록된 기이한 사건들이니 어찌 우리에게 전철이 되지 않겠는가? 이는 모두 일찌감치 일을 처리하지 않은 데서 비롯된 것이며, 나라의 살림살이와 백성들의 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은 것이다."


 "한 고조는 여후에게 임종시의 부탁을 남겼고, 당태종은 황태자 결정문제를 장손무기와 의논하였는데 짐은 읽을때마다 이를 수치스럽게 여긴다. 소인들은 창졸지간에 (황태자를) 폐하고 세우는 일에 관여하고 그것을 도모하여 한 사람을 추대하고 훗날 복이 굴러오기를 바라기도 한다. 짐의 마지막 숨이 붙어 있을 때까지, 어찌 이런 무리들을 용납할 수 있겠는가?"


 "짐이 태어났을 때 결코 신령스럽거나 기이한 징조들이 보이지 않았다. 또 자라날 때도 신기한 징조가 나타나지 않았으며 여덟 살에 제위에 오른 후 지금까지 57년 동안 역사책에 실려있는 상서로운 별, 상서로운 구름, 기린과 봉황, 지초가 나타나는 경사라든가 궁궐 앞에 불타는 진주와 옥이 나타나거나 천서가 하늘의 뜻을 나타내려고 떨어지는 것 따위의 하늘에서 내려준다는 상서로운 조짐은 사람들로 하여금 말하지 못하게 하였다. "


 "이는 모두 헛된 말일 뿐이다. 짐은 감히 그렇게까지 (잘 다스렸다고 말하지) 못하겠다. 다만 하루하루의 일상을 진실된 마음을 갖고 실제에 도움이 되도록 다스렸을 뿐이다."
 

 "이제 신하들은 황태자를 세워서 다스리는 일의 책임을 분담하라고 상주하고 있다. 짐이 갑자기 변고를 당할까 염려되기 때문이다. 죽고 사는 일은 정해진 이치이며 짐도 이에 관해 이야기하는것을 꺼리지 않는다. 다만 천하를 다스리는 대권은 한 사람이 모두 장악하고 있어야 한다. 짐은 10년 이래로 짐이 행하였던 일과, 짐이 품었던 마음을 모두 적어서 봉해 놓았는데, 아직도 이 일은 끝나지 않았다. 황태자를 세우는 일을 짐이 어찌 잊었겠는가? 제위는 가장 귀중하므로 만일 짐이 이 임무를 잊어버리고 편안히 쉬면서 모든 일에서 풀려난다면 더 오래도록 살 수 있었을 것이다.너희 신하들은 짐의 깊은 은혜를 잆었거늘, 어찌 짐 더러 모든 일을 그만두라고 말 할 수 있겠는가?"


 "이제 짐은 기력이 쇠약해져도 힘껏 버티고 있다. 천하를 다스리는 일을 자칫 그만두게 되면 지나 온 57년 동안 부지런히 다스려 온 것이 아깝지 아니한가? 짐의 고충과 진실된 마음은 이처럼 한결같다. 늙은 대신들이 짐더러 물러가 쉬기를 청하며 올리는 상주를 볼 때마다 눈물을 흘리지 않은 때가 없다. 너희들은 물러가 쉴 곳이라도 있지만 짐은 물러가 쉴 곳이 어디 있는가? 그러나 수십일간 휴양하고 평온한 죽음을 맞게 된다면 짐의 기쁨을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겠는가? 앞으로도 세월은 끝없이 흘러갈 터인데, 짐도 송고종처럼 장수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짐의 나이가 쉰일곱 되었을 때, 흰 수염이 몇 가닥 생기자 검게 물들이는 약을 가져온 자가 있었다. 짐은 웃으며 물리치고 '여지껏 흰 수염이 난 황제가 몇이나 있었는가? 짐의 수염이 하얗게 된다면 만세에 전해질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닌가?' 라고 말하였다. 짐이 제위에 올랐던 초기에 함께 일하였던 자들은 지금 한 사람도 남아 있지 않고, 그 뒤에 새롭게 벼슬이 올라, 힘을 합쳐 직무에 힘쓰며 공정하고 법을 준수하는 자들의 흰머리가 조정에 가득하니 참으로 오래되었다고 할 수 있다. 짐도 이에 만족한다."


 "짐은 천하의 존귀함과 온 세상의 부유함을 다 누렸다. 해보지 않은 일도 없고, 겪어 보지 못한 일도 없다. 그러나 늙어서도 한순간 쉬지 못하게 되자, 천하가 마치 낡아서 못 신게 된 신발 같고 부귀가 진흙이나 모래처럼 생각되었다. 이제 무사히 평온하게 죽는 것을 짐은 원하며, 그것으로 족하다. 


 짐이 50여년간 태평스러운 세상을 만들려고 애쓴 천자로서 근신하였다는 것을 기억하라. 진정 간절한 마음으로, 거듭해서 나의 삶이 평온한 죽음으로 마무리되기를 바란다.


 이 상유는 10년 동안 준비해 왔다. 만약 최후의 유조가 발표된다고 해도, 이 상유에서 언급되지 못한 말은 없을 것이다.


 짐은, 간을 드러내고 쓸개를 끄집어내고, 오장을 보여주는 것처럼 진심을 털어놓았다."


 짐은, 말을 맺노라.








 이 상유에서 강희제는 허심탄회하게 엄청난 중압감과 고통, 압력이 느껴지는 황제로서 자신이 느끼는 어려움과 힘듬을 말하고, 살면서 느낀 슬픔과 분노 등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강희제 자신이 고통스러워하고, 의심하던 인간의 모습, 그리고 황제의 인간적인 면모를 지우고 존엄함의 화신으로 만들어 버리는 오랜 역사적 전통 속에, 과연 그 자신이 "성군 황제" 가 아닌, "그 자신 그 자체" 로서 대로 정직하게 기억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심을 하던 모습들이 남아 있습니다.



 수십년간 거대한 제국의 황제로서 느낀 부담과 어려움, 그리고 이로 인한 고통을 담담하게 말하고, 여기에 지쳐 쇠약해지고 허약해져, 끝내는 병들어 죽음을 앞둔 시점에서 "이제 원하는것은 그저 편안한 죽음 뿐이다." 라고 말하는 강희제의 모습은, 영광과 광휘의 언사로 가득차야할 절대적인 황제의 모습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현군이니, 성군이니 하면서 간단하게 추앙하지만 강희제는 감정도 없고, 어려움도 모르며, 끝없이 당당하고 용감하고 현명한 그런 초인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자신의 말대로 "하루하루를 진실하게 살기 위해" 노력하며, 사실 정말 힘든데, 그만 놔버리고 싶고 신하들이 쉬라고 말하면 눈물이 나오는데, 죽을 힘을 다해 버티고 있었을 뿐입니다.



 강희제의 말대로, 이 상유는 최후를 앞두고 과중한 과업의 지쳐 늙은 노인이, 자신의 오장을 끄집어내 보여주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강희제가 실제로 사망하고 반포된 '공식적인' 유조(遺詔)는 어떠한지 보겠습니다. 






 "종례 제왕(帝王)들이 천하를 다스림에 하늘을 공경하고, 조상(의 가르침)을 본받는 것을 가장 중요한 일로 생각하였다. 하늘을 공경하고 조상을 본받는다는 것의 내용은 이렇다. 먼 곳에서 온 자를 자상하게 대하고, 능력 있는 자를 가까이 두며, 백성의 세금을 낮춰주어 재력이 넉넉하게 하고, 모든 사람에게 이로운 바를 골고루(나눠 주는 것을 진실한) 이로움으로 여기며, 천하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는 것을 (참된) 마음으로 여기며, 여러 신하들을 친근하게 대하고 백성들을 자식으로 여기며, 위태로움이 생기기 전에 나라를 보호하고 혼란스러움이 생기기 전에 잘 다스리며, 언제나 부지런하고 한가로이 쉬지 않고 나라를 위한 장구한 계책을 도모하는 것이다.


 짐은 이제 칠순이 되었고 제위에 오른 지 예순한 해가 되었다. 이는 모두 하늘과 땅, 조상들의 드러나지 않는 도움때문이었고 짐의 보잘 것 없는 덕 때문은 아니었다.


 역사책을 살펴보니 황제(黃帝)의 (다스림이 시작된) 첫해로 부터 지금까지 4,350여 년이 흘렀으며, 황제(皇帝)를 칭하여던 자는 301명이었지만 짐과 같이 제위에 오래 있는 황제는 아주 드물었다. 짐이 제위에 오른 지 20여년이 되던 날에는 30년간 제위에 있을지는 미리 알지 못하였고, 30년이 되던 날에는 40여년간 제위에 있을지 미리 알지 못하였다, 이제는 제위에 오른 지 61년이 지났다. 상서(尙書) 홍범(洪範)에서는 다섯 가지 복(福)을


 첫째는 오래 사는 것이고
 둘째는 잘 사는 것이며
 셋째는 몸이 건강하고 마음이 편안한 것이며
 넷째는 덕을 쌓는것이며
 다섯째는 수명을 다하고 죽는것이라 하였다.


 오복(五福) 가운데 수명을 다하고 죽는 것을 다섯번째에 둔 까닭은 참으로 그러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짐은 나이가 일흔에 가깝고 부유함으로 말하자면 온 중국을 소유하였으며 자손도 백 오십여명에 이른다. 천하(백성)도 평안하고 즐거워하니 짐의 복 또한 많다고 하겠다. 혹시 갑자기 죽을지라도 마음은 태연하다. 생각해 보니 제위에 오른 이래 비록 풍속을 바로 잡는데까지는 이르지 못하였지만, 천하를 평안하게 하고 모든 사람들이 여유있고 넉넉하게 하고자 애썻다. 짐은 항상 부지런하였으며 조심스러웠고 한가로이 쉬지 않았으며 조금도 게으르지 않았다. 수십년 동안을 하루같이 온 마음과 힘을 다하였다. 이런 정황을 어찌 노고(勞苦)라는 두 글자로 모두 표현 할 수 있겠는가? 


 옛날의 제왕 가운데 혹 수명이 길지 못하였던 자들에 대해 사론(史論)에서는 대게 너무나 방탕하고 주색에 빠졌기 때문이라고 평하였다. (그러나) 이는 모두 서생(書生)들이 참으로 순전하고 훌륭한 군주에 대해서라도 흠을 들추어 내려고 비평하기를 즐겨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짐이 옛날의 제왕들을 위해 변명하자면 천하를 다스리는 일이 너무 번거로우므로 힘들고 고달픈 바를 감당하지 못해서 (일찍 죽은 것)이다. 제갈량은 "죽을 때까지 온갖 정성을 다바쳐 나랏일을 돌본다." 라고 하였는데, 남의 신하로서 (이렇게 행한 자는) 오직 제갈량 한 사람뿐이었다. 그러나 제왕들의 책임은 막중하고 벗어날 수도 없다. 이를 어찌 신하들과 비교할 수 있을 것인가?


 신하들은 벼슬살이를 할 만하면 벼슬을 살고 그만둘 만하면 그만둔다. 늙으면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자손들을 돌보면서 유유자적하게 보낼 수 있다. 그러나 군주들은 평생토록 부지런히 수고하고 쉴 수가 없다. 순(舜) 임금과 같은 사람은 무위지치(無爲之治)하였다고 일컫어지지만, 남순(南巡)하다가 창우에서 죽었다. 우(禹) 임금은 손발에 못이 박히도록 수레를 타고 다니며(치수에 힘쓰다가) 후이지에서 죽었다. 이처럼 정사를 돌보는 데 힘껏 노력하고 두루 다니며 순행하여 한가로이 쉬지 않아으니, 어찌 무위청정을 숭상하여 자신을 돌바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주역의 돈 괘에 나타난 육효는 군주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으니, 이로부터 군주는 본래 편안히 쉬는 바가 없고, 은퇴하여 자취를 감출 수도 없음을 알 수 있다. 죽을 때까지 온갖 정성을 다바쳐 나랏일을 돌본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자고로 천하를 얻는데 그 올바름이 우리 청과 같은 왕조는 없었다. 태조와 태종께서 처음부터 천하를 얻으려는 마음을 품은 것은 아니었다. 일찍이 우리의 군대가 베이징에 가까이 왔을 때 여러 대신들은 모두 마땅히 명나라를 취해야 한다고 아뢰었다. 태종 황제께서는 "명나라와 우리 나라는 원래 사이가 좋지 않았으므로 취하기가 매우 쉽다. 그러나 중국의 군주를 생각해서 차마 취하지 못하는 것이다." 라고 하셨다. 후에 유적 이자성이 베이징 성을 공격하여 함락시키고 숭정제가 스스로 목을 메어 죽자 대신과 백성들이 성문을 나와 (우리를) 맞아들였다. (이에 우리는) 이자성의 무리를 소탕하고 대통을 계승하였다. 그리고 전례를 살펴서 숭정제를 장사지냈다.


 옛날 한 고조는 일개 정장에 불과하였다. 명 태조는 황각사의 일개 승려에 지나지 않았다. 항우가 군대를 일으켜 진을 공격하였으나 마침내 천하는 한에게 돌아갔고, 원 말에는 진우량 등이 봉기하였으나 마침내 천하는 명에게로 돌아갔다. 우리 청조는 명나라를 계승하였으며 우리의 조상들은 하늘의 뜻에 따르고 민심을 거스르지 않아서 (마침내)천하를 어루만져 (평안하게) 하였다. 이로 보건데 (우리 청조의) 참된 군주들이 난신적자들을 모두 제거하였던 것이다.


 무릇 제왕에게는 천명이 있어서 마땅히 장수를 누리도록 (천명을 받은 자는) 장수를 누리지 못하도록 할 수 없고, 태평을 누리도록 (천명을 받은 자는) 태평을 누리지 하게 할 수 없다. 짐은 어려서부터 책을 읽어 고금의 도리를 조잡하게나마 깨우쳤다. 또 젊어서 힘이 넘칠 때는 강궁을 쏠 수 있었다. 군사를 움직이거나 전투하는 일에도 모두 뛰어났지만 평생에 한 사람이라도 제멋대로 죽이지 않았다. 삼번의 난을 평정하고 막북을 공략함에 한결같은 마음으로 전략을 짰고 호부의 재정은 군비나 기근구제비가 아니면 헛되이 쓰지 않았으니 이는 모두 백성들의 기름(을 짠 것)이기 때문이었다. 각지를 순행하면서는 수놓은 채색비단으로 행궁을 장식하지 않았으며 한 곳에서 쓴 비용도 일이만 냥을 넘지 않았으니, 매년 하공에 지출하는 300여 만 냥의 비용에 비교하면 100분의 1에도 못미친다.


 옛날 양 무제는 나라를 세운 영웅이었지만 늙어서 후경에게 핍박받아 화를 당하였다. 수문제 역시 왕조를 처음으로 연 군주였지만 그 아들 양제의 악함을 미리 알 수 없었으므로 마침내 평안한 죽음을 맞이하지 못하였다. 이는 모두 일찍이 (일을)처리하지 않은데서 비롯된 것이다.


 짐은 자손이 100여 명이고 나이는 이미 일흔이다. 제왕, 대신, 관원, 군인과 백성 및 몽골인들 모두 짐의 나이가 많은 것을 안타까워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이제 나이가 많아 죽는다 할지라도 짐은 기쁘다. 


 태조 황제의 아들인 예친왕 다이샨과 여요왕 아바타이의 자손들도 모두 평안하게 살고 있다. 짐이 죽은 후에 너희들이 마음을 합하여 (나라를) 보존하면 짐도 또한 흔쾌하고 편안하게 죽을 것이다. 넷째아들 옹친왕 윤진은 인품이 고귀하고 신중한 것이 짐을 아주 닮았으니 반드시 대통을 이을 수 있을 것이므로, 짐을 이어서 제위에 올라 황제가 되게 하라. 전례를 준수하여 상복을 입은 후에 27일이 지나면 (상복을) 벗어라. 이를 천하에 포고하여 모두가 듣고 알게 하라." 





 그 기본적인 내용의 기반이 되는것은 강희제가 생전에 남긴 상유 입니다. 그런데, 상유의 내용 중에 '위대한 황제' '성군 황제' 가 아닌 개인의 나약함 등이 느껴지는 부분은 의도적으로 삭제가 되어 있습니다. 이 유조에서는 상유에서 보여지던 감정, 분노, 슬픔, 노곤함 등이 모두 사라져 있으며, 성조(聖祖)라는 시호에 맞게, 용맹하고 현명하고 사려깊은 위대한 군주로서 그 면모가 가공되어 있고, 그 과정에서 결국 그 미묘한 인간성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은 자연스럽게, 혹은 의도적으로 배제되어 결국 온화하고 따뜻하고 상투적인 방식으로 장엄하게 꾸며지는 위대한 군주로서의 면모만 남게 되었습니다.



 결국 강희제가 생전에 두려워했던 바대로, 후세 사람들은 강희제라는 개인의 인격을 지우고 여기에 성군이라는 이미지를 덧쓰게 한 셈입니다.



참조 : 조너선 스펜스, 강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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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옳은 비교인지 모르겠지만 NBA에서는 경기 뛰는 모습(영상)을 보지 않고 그저 '스탯으로만' 옛 선수들을 평가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스탯은 그 선수를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지표입니다만 그것이 선수로서의 모든 능력과 가치를 설명해줄 수는 없지요.

 저는 '스찌'라는 용어를 좋아하진 않지만 스탯으로만 그 선수의 모든 것을 설명하려들고 줄 세우려 하는 것에는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그 시대를, 그 분야를 대표하는 거대한 존재를 흔히 '아이콘'이라고 하죠. 개인적으론 스탯과 함께 이러한 아이콘들의 등장과 활약이 끼친 리그 내외의 파급력, 그리고 '프렌차이저'의 가치도 함께 고려했으면 합니다.



 '성조 강희제'

 만주인으로 태어나 1억분의 1의 확률으로 황제의 지위에 오른 인물. 그가 황제가 된 것은 당대 중국인들이 누렸던 가장 큰 행운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는 그가 남긴 '스탯'을 두고 벌이는 후세 사람들의 입방아를 염려했죠.
 
 강희제는 수많은 업적을 남겼고 결국 '성군'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러한 상징은 하루아침에 뚝딱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개선을 위한 치열한 고민 등 수많은 과정 속에서 나온 결과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 모든 과정은 사라지고 그냥 '일 잘했네'이라는 결과만 남아버렸죠.
 
 천하를 평정한 절대지존도 이러한 암울한 미래를 염려하고 더 늦기 전에 그것을 막고자 자신의 생각을 숨김없이 고백하였던 것입니다.

 정말 이처럼 생각이 깊은 군주가 또 있을까요. 알면 알수록 정말 놀라울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