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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태종이 안시성 공격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본문

당태종이 안시성 공격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박신혜 2018. 9. 30. 07:40

 영화 <안시성>이 상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평소에 영화를 잘 안 보고 (돈을 지불하는만큼 아무거나 볼 수 없기에) 본작 감독의 생각이 싫어서 보진 않았지만, 고구려 역사가 오랜만에 대중들에게 관심을 받았다는 점은 긍정적이라 생각합니다. 적어도 주몽이나 연개소문 따위 쓰레기들보단 낫잖아요.


 다만 1차 여당전쟁의 승리 후 박수갈채가 안시성에게'만' 쏟아지는 점은 있습니다. 그것이 잘못됐다는 게 아닙니다. 안시성 전투는 위대한 승리였죠. 특히 고려가 요동 방어선이 뚫리는 위기 속에서 종전을 이끌어낸 승리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실제로 안시성 이전에 개모성, 요동성, 백암성, 비사성 등이 함락되고 요동성 구원군과 안시성 구원군(주필산 전투)이 참패를 당하는 등 고려도 많은 타격을 입었지만 안시성의 승리 덕분에 당군을 회군시키고 뺏긴 영토도 되찾을 수 있었으니까요.


 사실 역사적 사건을 조명할 때 배경부터 과정, 의의 등 그것과 연관된 모든 것을 살펴보고 똑같은 비중으로 조명하기는 불가능합니다. 안시성 전투가 유독 크게 빛나는 것도 마찬가지죠. 하지만 안시성을 도와준 명품 조연들을 외면할 순 없겠죠. 그래서 이번엔 안시성 외 여당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다른 요인들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출처 http://www.joongboo.com/news/articleView.html?idxno=347152


 고구려의 요동 방어선을 나타낸 지도입니다. 영류왕 시기였던 631년부터 천리장성을 건설해 장장 16년 만에 완성했다고 하죠. 자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중국의 만리장성이나 1033년부터 쌓은 고려의 천리장성과 달리 이것의 실체가 없습니다.(...) 즉 기록은 있는데 이것이 정말 장성이 맞느냐는 것이죠. 어쨌든 이것이 완공되기 전인 645년 당태종의 침공을 받아 1차 여당전쟁이 벌어집니다.

 

 우리는 당태종이 요동성을 비롯한 성 몇 개를 뺏기는 위기 상황에서 최후의 보루였던 안시성이 막아내 물리쳤다고 알고 있습니다. 안시성이 이긴 건 맞는데 '최후의 보루'라구요? 평양이 아니구요? 이게 맞을까요? 


 드라마 <대조영>에서는 1차 여당전쟁 승리 후 평양과 요동의 장수들이 갈라져 '너희는 뭐했냐' 식으로 다투는 장면이 나옵니다. 영화 <안시성>에서는 아예 연개소문이 안시성주를 반역자 취급하며 버립니다. 이게 가당키나 할까요? 


 지도를 보시면 안시성 주변에 여러 성들과 첸산산맥이 보입니다. 결국 결국 여당전쟁은 초반에 고려가 고전했으나 최종적으로는 전선을 요동에서 막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안시성 혼자만의 힘으로 가능했을까요?

 우리는 여기서 연개소문을 위시한 중앙의 지원과 요동 전선의 다른 성들의 공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른 분들은 별에 별 사서를 척척 찾아내시는데 저는 역알못에 정보력도 부족해서 늘 인용하던 거 또 해야겠네요. 하지만 그럼에도 중요한 단서 몇 개를 찾아내는데 성공했습니다. 제가 주목한 성은 바로 건안성입니다.


 건안성은 요하와 첸산산맥 부근에 위치한 성으로서 건안성을 뺏기면 다음 길목인 오골성과 박작성은 물론, 평양까지 위협 받게 됩니다. 즉 건안서은 평양 진군의 주요 길목이었기에 당군으로선 반드시 함락시켜야했죠.


 자 그럼 건안성에 관한 기록을 살펴보겠습니다.

영주도독 장검(張儉)이 호병(胡兵)을 거느리고 선봉이 되어 나아가 요수를 건너 건안성(建安城)註 056으로 가서, 우리 병력을 깨뜨리고 수천인을 죽였다.[각주:1] (호병은 이민족 부대)

 시작부터 털렸네요.(...) 적이 몰려오자 우리군이 성문을 열고 맞아 싸웠는데 수천명이 전사하는 참패를 당했습니다. 그럼에도 '성이 함락되었다.'라는 기록은 없는 걸로 보아 성공적으로 수비를 했던 모양입니다.


또 졌어?


 고려의 패배는 계속됩니다.

이세적과 강하왕 도종이 개모성(盖牟城)註 058을 공격하여 빼앗아, 1만인註 059을 사로잡고 양곡 10만 석을 얻어 그 땅을 개주(盖州)로 삼았다.註 060장량(張亮)이 수군을 거느리고 동래(東萊)에서 바다를 건너 비사성(卑沙城)註 061을 습격하였다. 성은 4면이 깎은 듯하고 오직 서문(西門)만이 오를 수 있었다. 정명진(程名振)이 병력을 이끌고 밤에 도착하자, 부총관 왕대도(王大度)가 먼저 올랐다.[각주:2]


5월에 성이 함락되어 남녀 8천 명을 빼앗겼다.註 062[각주:3]

 그렇습니다. 건안성이 버티는 동안 요동도행관대총관 이세적(이적)은 개모성을 함락하였으며, 수군을 이끌던 평양도행군대총관 장량은 비사성을 함락시킵니다.


 그리고 이세적은 요동성을 공격하였는데 이 때 고구려는 신성과 국내성에서 보기병 4만을 구원병으로 보내지만 강화왕 이도종이 이끄는 기병 4천의 기습과 이세적의 협공에 천 명의 전사자를 내고 패주합니다.[각주:4]


 그리고 이세적이 성을 공격한지 12일 뒤, 당태종의 친정군이 합류합니다. 결국 요동성은 1만의 전사자와 5만의 포로, 50만석의 양곡을 뺏기는 엄청난 피해를 입으며 함락되었으며[각주:5], 백암성도 저항을 멈추고 항복합니다.[각주:6]


능연각 24공신 중 한 명인 이세적(이적)


 자 여기서부터 본론에 들어가겠네요. 당태종은 이세적과 다음 행로에 대해 논의합니다.

황제가 백암성에서 이기고 이세적에게 일러 말하기를 “내가 들으니 안시성은 성이 험하고 병력이 정예註 085이며, 그 성주가 재능과 용기가 있어 막리지의 난註 086에도 성을 지키고 항복하지 않아, 막리지가 이를 공격하였으나 함락시킬 수 없어 그에게 주었다. 건안성은 병력이 약하고 식량이 적어 만일 불의에 나가 이를 공격한다면 반드시 이길 것이다. 공이 먼저 건안성을 공격하는 것이 좋겠다. 건안성이 떨어지면 안시성은 내 배 안에 있는 것이니, 이것이 병법에 ‘성에는 공격하지 않는 곳이 있다.’註 087고 말하는 것이다.”고 하였다. 대답하여 말하기를 건안성은 남쪽에 있고 안시성은 북쪽에 있으며, 우리 군량은 모두 요동에 있는데 지금 안시성을 지나 건안성을 공격했다가, 만약 고구려인들이 우리 군량 보급로를 끊는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먼저 안시성을 공격하고 안시성이 떨어지면, 북을 치며 나아가 건안성을 빼앗아야 합니다.”라 하였다.[각주:7]

 당태종은 그 유명한 '내가 들으니...'라는 카더라를 내뱉으며 건안성을 먼저 치자고 합니다. 하지만 이세적은 안시성 공격을 주장했고 태종은 그말대로 했으나 결국 패하고 말았죠.


 우린 방구석에서 결과를 다 알고 있기 때문에 또 훈수를 둘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세적이 건안성 공격을 반대한 이유를 보면 이쪽이 더 합리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위의 지도를 보시면 당군의 군량은 요동에 있습니다. 안시성은 요동과 건안 사이에 있죠. 즉, 이세적은 건안성을 공격했다가 중간에 있는 안시성이 보급을 끊어버리면 큰일이니 위험성을 덜고자 안시성 공격을 주장한 겁니다.

하지만 공격은 연이어 실패하고 시간만 흘러가자, 이번엔 오골성을 치자는 의견이 나옵니다.

고연수·고혜진이 황제에게 청하여 말하기를 “저희가 이미 대국에 몸을 맡겼으니 그 정성을 감히 바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천자께서 빨리 큰 공을 이루어야 저희가 아내와 자식을 만날 수 있습니다. 안시성 사람들은 그 집을 돌보고 아껴서 사람마다 자진해서 싸우므로 빨리 함락할 수 없습니다. 지금 저희가 고구려의 10여 만 무리를 가지고서도 황제의 깃발을 바라보고 무너졌으니, 우리나라 사람들의 간담도 부서질 것입니다. 오골성(烏骨城)註 088의 욕살은 늙어서 굳게 지킬 수 없습니다. 병력을 옮겨 그곳으로 가면 아침에 도착하여 저녁에 이길 것이며, 그 나머지 길을 막는 작은 성들은 필시 기세만 보고도 달아나고 무너질 것입니다. 그런 후에 물자와 양식을 거두어서 북을 치고 나아가면 평양도 반드시 지키지 못할 것입니다.”라 하였다.
여러 신하들도 또한 말하기를 장량의 병력이 사성(沙城)註 089에 있으니 그를 부르면 이틀 밤에 도착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고구려가 두려워하는 것을 이용하여 힘을 합쳐 오골성을 함락시키고, 압록수를 건너 곧바로 평양을 빼앗는 것이 이번 거사에 달렸습니다.”라 하였다.
황제가 이에 따르려고 하자, 홀로 장손무기가 말하기를 “천자가 친히 정벌하는 것은 여러 장수와는 달라서 위태로움을 이용하여 다행을 바랄 수 없습니다. 지금 건안과 신성의 오랑캐 무리가 10만입니다. 만약 오골(烏骨)로 향한다면 모두 우리의 뒤를 밟을 것입니다. 먼저 안시성을 격파하고, 건안성을 빼앗은 연후에 오래 말을 달려 전진해가는 것만 못합니다. 이것이 만전의 계책입니다.”라 하였다. 황제가 이에 그만두었다.[각주:8]

 주필산에서 패한 뒤 항복한 고연수와 고혜진은 오골성을 치라고 조언하고 다른 신하들도 동조합니다. 하지만 장손무기가 오골로 가면 건안성과 신성의 군사들이 추격해온다며 반대를 합니다.


 자, 위에서 쭉 읽어오면 고려는 하나의 성이 공격받으면 다른 여러 성의 군사들이 도와주러 온다는 대목이 자주 보입니다. 이러한 협력 수비는 성의 고립을 막고 당군의 화력을 분산시키는 효과가 있습니다. 이세적과 장손무기가 반대한 이유도 이것입니다. 차근차근 진군하지 않고 다른 곳에 화력을 집중했다간 다른 성의 습격을 받을 위험이 크다는 것이죠.


 특히 오골성으로 진군했을 경우 평양은 더 가까워지겠지만, 독 안에 든 쥐처럼 고구려 땅 한복판에서 다른 성들의 샌드위치 공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만약 평양으로 냅다 달려 보장왕과 연개소문을 잡으면 병자호란 되는 것이고, 실패하면 살수대첩 되는 꼴이니 이건 정말 생명을 건 도박인 거죠. 그만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었습니다.

 

 또 하나 장량이 아직 비사성에 있다는 구절이 보입니다. 그런데 《신당서》에는 고연수, 고혜진이 항복했다는 기록 아래 장량이 건안성을 공격했다는 기록을 넣었습니다.

張亮이 다시 高(句)麗와 建安城註 106 밑에서 싸워 城을 다 함락시키니, 이때는 포위를 길게 늘여서 공격하였다.[각주:9]

 성을 거의 함락시킬 뻔 했다면서 갑자기 비사성에 있다고 하네요?? 이 기록과 장손무기의 발언을 함께 살펴보면 건안성은 장량의 공격을 물리치고 성을 보존했던 것이 확실합니다. 만약 이 때 장량이 건안을 뺏았다면 안시성으로 합류했거나 당태종이 다른 움직임을 보였겠지만 그런 기록은 없죠. 결국 건안성은 신성과 함께 당태종의 뒤를 잡을 수 있는 위험 세력으로 남는데 성공했던 겁니다. 이는 당태종이 안시성 공격을 강제하는 요인이 되었고, 연이은 실패 끝에 당태종은 퇴각합니다.


1차 여당전쟁은 안시성만의 승리가 아니다.


 영화 안시성에서 강조하는 부제는 바로 '버림받음'입니다. 즉 연개소문은 자신들을 '반역의 성'이라며 버렸지만 그럼에도 홀로 끝까지 싸워 이겨냈다는 것이죠. 영화의 비장함을 살리려는 목적인가 본데 고려의 요동 방어선과 연개소문은 이런 수준낮은 감독의 생각과는 달리 결코 허술하지 않았습니다.


 근데 무슨 연개소문이 안시성을 버리고 평양에서 싸워요? ㅋㅋ 이딴 걸 각본이라고 ㅋㅋ


 안시성의 승리가 위대한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결코 안시성 혼자만의 승리는 아니었습니다. 건안성 그리고 자세한 기록은 찾진 못했지만 역시 함락되지 않았던 신성 등의 존재는 당군에겐 배후의 위협으로 다가왔고 결과적으로 안시성 공격을 강요해 그들의 발을 묶었던 것입니다. (당군이 진로를 바꿨다면 안시성도 그러한 역할을 맡았을 것입니다.)

 

  1. 卷第二十一 髙句麗本紀 第九 > 보장왕(寶藏王) > 四年夏四月 당군이 고구려의 성을 공격하다(0645년 04월 (음)) [본문으로]
  2. 위와 같음 [본문으로]
  3. 卷第二十一 髙句麗本紀 第九 > 보장왕(寶藏王) > 四年夏五月 비사성이 함락되다(0645년 05월 (음)) [본문으로]
  4. 舊唐書(1) > 東夷列傳 > 高句麗 [본문으로]
  5. 卷第二十一 髙句麗本紀 第九 > 보장왕(寶藏王) > 四年夏五月 당군이 요동성을 공격하여 함락시키다(0645년 05월 (음)) [본문으로]
  6. 卷第二十一 髙句麗本紀 第九 > 보장왕(寶藏王) > 四年 백암성이 당 태종에게 항복하다(0645년 (음)) [본문으로]
  7. 卷第二十一 髙句麗本紀 第九 > 보장왕(寶藏王) > 四年 당군이 안시성 전투에서 패하여 돌아가다(0645년 (음)) [본문으로]
  8. 위와 같음 [본문으로]
  9. 舊唐書(1) > 東夷列傳 > 高句麗 > 延壽와 惠眞이 15만 6천 8백명을 거느리고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