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ㅅ'

안시성주 이름은 정말 양만춘일까? 양만춘이란 이름의 유래 본문

안시성주 이름은 정말 양만춘일까? 양만춘이란 이름의 유래

박신혜 2018. 9. 20. 03:14

안시성주 양만춘(?) 역의 조인성 배우


신작 <안시성>이 드디어 개봉했다.

내용은 이미 전국민이 다 알 것이므로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른바 '양만춘'으로 잘 알려진 안시성주 이하 안시성 군민들이 일치단결하여 당나라 침략군을 물리친 88일 간의 이야기로 개봉 전부터 많은 화제를 불러온 작품이다.


조인성, 남주혁, 박성웅, 설현 기타 등등 인기 연예인이 나오기도 하지만, 안시성 전투라는 역사적 사실이 그 자체로 상당한 상업적 가치를 지닌 소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안시성 전투가 가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먼저 우리 국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고려(고구려)의 역사라는 점을 뽑을 수 있다. 왜 그럴까?

왜 태조왕건의 '고려'가 아닌 고구려의 바뀐 국호인 '고려'가 큰 사랑을 받는가?

우선 한국인을 비롯한 세계 모든 민족은 공통적으로 다음과 같은 '역사 갈증'을 지니고 있다.


'외국에 자랑할만한 역사 없나? 우린 힘자랑해본 역사 없나?'


그렇다.

'강력한 군대와 드넓은 영토를 지녔던 강대국의 역사가 있는가?'

'앙숙인 민족과 전쟁을 벌여 승리한 역사가 있는가?'


'역사 갈증'을 해소해주는 만병통치약은 바로 만국 공통으로 사랑받는 영역, 이른바 '국뽕'이다.

지나치면 안 된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질리도록 써먹는다.

왜냐? 필요하니까. 여전히 먹히니까.


고려 군대를 대표하는 상징적 존재, 개마무사


자 그럼 한국인은 어떨까? 한국인들에겐 역시 고려(고구려)의 역사가 최고다.

드넓은 만주벌판을 달리는 개마무사들, 통일제국 중국과 당당히 맞서 승리한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


특히 고구려의 가치는 후대 왕조들과 비교를 통해 더욱 빛난다. 중국에 조공 바치며 사대라는 이름하에 충실한 신하가 돼버린 신라, 조선과 비교해보면 고구려야말로 진정 한국을 대표하는 역사가 아닌가? 당신이 현대의 한국인이라면 '고구려빠'가 되는 건 당연하지 않겠나?


심지어 고려가 멸망한 원인이나 신라가 이길 수 있었던 원동력, 삼한일통의 의의를 연구하긴 커녕, 신라의 통일을 가리켜 '민족을 배반했네 어쩌네'하면서 무차별 비난을 쏟아내는 현실.


이것이 배틀로얄 한복판에서 살기 위해 몸부림 친 사람을 향해 "니가 죽었어야지!"라고 희생을 강요하는 거랑 뭐가 다른지. 그럼에도 초등학생부터 성인들까지 이러한 사고 방식에 갇혀있지 않는가.


잠깐 이야기가 딴데로 샜는데 그만큼 대중들은 역사 체엔 큰 관심이 없으며 그저 심심풀이 땅콩이나 국뽕 고취라는 '감정, 평가'의 영역에 갇혀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이것은 옹호, 비판을 떠난 현실이다.


그렇기에 고구려사는 역으로 역사에 관심없는 한국인들까지 포용할 수 있는, 특별한 존재이며 그 일부인 안시성 승리도 그 수혜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당 태종 이세민


여기에 이 승리를 포장해줄 엄청난 도우미도 있다. 다름아닌 오늘날 중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황제를 뽑을 때 반드시 언급된다는 인물, 당 태종이다.


비록 형제를 죽였으나 당 태종은 시대를 막론하고 명군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그의 업적을 살펴보면 수나라 멸망 후 내전에 휩싸인 중국을 통일하고, 황제에 오른 뒤에는 정국을 안정시키고, 동돌궐 등 여러 유목민족을 평정하여 '가한'의 칭호를 받는가하면 고창국을 멸하고 실크로드를 장악하였다. 이처럼 그의 재위기는 당대 연호을 딴 '정관의 치'(貞觀之治)라 불리며, 태평성대의 대명사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였으니 높이 평가받을 수밖에.


물리친 상대의 위상이 높으면 높을수록 자신의 위상도 올라가는 건 당연지사. <불멸의 이순신>을 비롯한 각종 한국 매체에서 B급 장수 와키자카를 일본 최고 장수로 억지 포장해주는 것도 그 때문이고.


하물며 와키자카 따위 가짜가 아닌 진짜배기 당 태종을 물리친 기록이 있다? 당연히 그 가치는 올라가겠지.


<대조영> 여당전쟁 부분에서 선보인 당나라 백만 대군


마지막으로 안시성 전투에 대규모 당군이 동원되었기 때문에 이를 활용한 연출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당나라가 동원한 군대의 규모는 여전히 불명이지만 (10만~50만까지 설이 분분한데 30만 이상인 건 확실해보임)

어쨌든 대규모인 건 사실이고 여기에 다양한 공성 무기와 '토산'이라는 신선한 소재까지 포함돼있어 그 자체로 웅장하고 장엄한 연출을 만들어내기엔 좋은 소재이다. 역사에 상관없이 대규모 전쟁물에서 느껴지는 오락성은 충분히 검증된 것이니까. 



수나라, 당나라를 물리친 고려의 승리는 동아시아 세계에서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첫 번째 역사였다.


고구려사의 가치에만 매몰된 현대 한국인을 비판하고자 좀 비꼬면서 쓰긴 했는데, 그럼에도 안시성 전투는 분명히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이다. 그 가치는 절대로 폄하할 수 없다.


안시성 전투는 '영웅' 당태종을 물리치고 1차 여당전쟁을 종식시킨 승리였다. 물론 당의 주력이 빠진 틈을 탄 설연타의 뒤치기 같은 다른 요인들도 있었지만 안시성이 승리한 사실은 분명하다.


여기서 잠깐. 여러분은 몽골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 초원? 부흐? 힘? 운게른? 수흐바타르? 아마 절대다수는 징기스칸과 몽고제국을 꼽을 것이다.


이처럼 어떤 나라나 민족을 바라볼 때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가장 먼저 떠올리는 '고유의 컨텐츠'라는 게 있다. 우리나라는 동아시아에서 '수양제의 백만대군과 영웅 당태종을 물리쳤던 나라'로 유명했다. 통일 중국을 격퇴한 역사가 하나의 전설이 되어 후대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타이틀이 된 것이다.


실제로 1260년 몽고의 쿠빌라이는 태자 시절 원종이 자신을 찾아오자 이렇게 말했다.

“고려는 만 리나 떨어져 있는 나라이고, 당(唐) 태종(太宗)이 친히 정벌하였으나 굴복시키지 못하였는데 지금 그 나라의 세자가 스스로 나에게 귀부(歸附)해오니 이것은 하늘의 뜻이다.”[각주:1]

이 같은 위상은 후대에도 이어져 명나라는 임진왜란 이전(부들부들)까지 "조선은 수나라의 백만대군과 그 위대한 당태종을 물리친 고구려의 후예"로 높이 평가했을 정도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나.


자, 이렇게 자랑스러운 역사를 이제 현대에 멋지게 재연하는 일만 남았다.


그런데...



정작 그 안시성주의 이름을 모른다...!!

'양만춘'이라고 말할 사람이 있겠지만 이는 정사에 기록된 이름이 아니다.

김부식도 《삼국사기》에 안시성 승리를 기록하며 다음과 같이 논하였다.


"총명하고 세상에 다시 나오기 힘든 당태종을 물리치다니 그 성주는 호걸로 보통이 아닐텐데 이름이 전하지 않으니 매우 애석하다."[각주:2]


그렇다...안시성주는 안시성 전투를 제외한 모든 것이 미상인 것이다.



자 그렇다면 여기서 다음과 같은 의문이 들 것이다.

'아무 것도 모른다면서 양만춘이란 이름은 어떻게 안거야?'

'조선시대에도 안시성주 이름은 양만춘으로 다 기록했는데?'


<대조영>에서 양만춘 역을 맡은 임동진 배우


그렇다. 조선의 지식인들은 양만춘이란 이름을 알고 있었다. 그 명단만 봐도 윤근수, 이시발, 인조, 남이공, 현종, 송준길, 이익 등등...[각주:3][각주:4]

이처럼 양만춘의 이름과 명성은 조선시대에 널리 퍼져있었다. 김부식은 모르는데 조선인들은 알고 있었다? 어떻게 된거지?


여러 자료를 나열하는 것보다 모든 궁금증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자료를 찾았다. 다음 논문의 초록를 보자.


본 논문은 唐나라와의 安市城 전투를 승리로 이끈 高句麗의 명장 安市城主의 姓名인 ‘양만춘’의 출처 양상에 대한 논의를 확대・심화함으로써 그 定論을 도출하고자 한 것이다. Ⅱ장에서는 안시성주의 성명 ‘양만춘’의 출처로 알려져 있는 『唐書演義』와 관련하여 몇 가지 중요한 사항들 을 살펴보았다.


첫째는 『唐書演義』와 관련된 조선 중・후기의 다양한 문헌 기록들을 검토해보았다. 이를 통해 조선의 지식인 중에는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5년 전부터 중국에 다녀온 사신들을 통해서 안시성주의 성명이 ‘양만춘’이라는 사실을 인지한 경우가 있었고, 임란 발발 이후인 1593년(선조 26)부터는 조선에 출정을 온 명나라 장수들을 통 해 이러한 사실이 더욱 폭넓게 알려지게 되었음이 드러난다. 또한 그 과정에서 안시성주의 성명을 ‘양만춘’으 로 기록하고 있는 『唐書演義』라는 책과 아울러 거기에 수록된 내용도 알려지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둘째는 1553년(명종 8)에 명나라 사람 熊鍾谷이 ‘編集’하여 중국에서 간행된 『唐書演義』라는 소설 속에 안시 성주 ‘양만춘’의 양상이 어떻게 그려져 있는지 확인해보았다. 이를 통해 조선 중・후기의 문헌 속에 기록된 『唐書演義』가 실제 중국에서 간행되었던 『唐書演義』와 같은 내용의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唐書演義』가 안시성주 ‘양만춘’의 성명 출처 가운데 가장 신빙할 만한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셋째는 조선 중・후기의 문헌 속에서 『唐書演義』와 더불어 안시성주 ‘양만춘’의 성명 출처로 함께 거론되어 온 ‘太宗東征記’라는 것에 대해 검토해보았다. 이를 통해 ‘太宗東征記’는 명나라 장수 오종도가『唐書演義』를 염두에 두고 그 일부의 내용을 가지고 표현한 것에 불과한데, 윤근수 이래로 조선의 많은 학자들이 이를 책의 제목으로 잘못 이해해왔음을 알 수 있다.


넷째는 『唐書演義』의 산생 시기와 작자를 검토해봄으로써 안시성주의 성명 ‘양만춘’이 어느 시기 누구에 의 해 최초로 쓰이게 되었는지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1553년(명종 8)에 간행한 것이 현재까지 발견된 『唐書演義』의 가장 앞선 刊本이기는 하지만, 이 간본 또한 기존의 선행 판본을 저본으로 하여 ‘編集’된 것에 불과한 것 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므로 안시성주의 성명 ‘양만춘’이 1553년(명종 8) 이전에 이미 등장했던 것은 분명하 지만, 어느 시기 누구에 의해 최초로 쓰이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확단할 수 없다.


Ⅲ장에서는 『唐書演義』와 ‘太宗東征記’ 외에도 안시성주 ‘양만춘’의 성명 출처로 거론되는 몇 가지를 더 살펴 보았다. 이를 통해 안시성주의 성명 ‘양만춘’의 원래 출처는 『唐書演義』임을 한 번 더 확인하며, 양만춘의 성 명 출처와 관련하여 조선 후기 문헌 속에서 거론되는 『餘冬序錄』, 『麗史抄』, ‘世傳’ 등의 자료들은 신빙할 만한 것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각주:5][각주:6]


남재철 교수님 논문(각주 참고)의 초록이다. 이 초록의 내용을 정리해보면...


1. '양만춘'이란 이름의 출처는 명나라 시대 웅종곡(웅대목)이 쓴 소설 《당서연의(唐書演義)


2. 임진왜란 이전부터 중국에 다녀온 사신들은 양만춘이란 이름을 안 경우가 있었으며, 왜란 때 온 중국인들을 통해 그 이름이 널리 퍼짐


3. 또 하나의 출처로 알려진 《태종동정기(太宗東征記)는 《당서연의》의 일부로 윤근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착각한 것.



또 하나 중국 바이두 백과사전에서 양만춘을 검색해보면...


梁万春

 

(传说中的高句丽安市城主)

 编辑

同义词 杨万春(高句丽王朝将领)一般指梁万春(传说中的高句丽安市城主)

本词条缺少信息栏,补充相关内容使词条更完整,还能快速升级,赶紧来编辑吧!
梁万春,中国明代小说《唐书志传通俗演义》中的人物,为作者熊大木所虚构的唐太宗东征高句丽安市城主的名字。16世纪末,该名字传入朝鲜半岛,朝鲜人将该名字与朝鲜固有的“唐太宗中箭眇目”的传说结合在一起流传。由于韩语中存在对汉字词的头音规则,“梁”字被念成“Yang”,故在流传过程中“梁万春”的汉字写法逐渐演变为“杨万春”,两者混用(韩语中均写作양만춘、读作Yang Manchun)。经过近代爱国启蒙运动以及思想家申采浩等的宣传,杨(梁)万春成为朝鲜半岛家喻户晓的民族英雄,并被用来命名韩国的驱逐舰。

양만춘(梁万春) (전설적인 고구려 안시성주)


동의어 양만춘(杨万春), (고구려 왕조 장수) 일반적으로 '양만춘'(梁万春) (전설적인 고구려 안시성주)


양만춘(梁万春), 중국명대소설 《당서지전통속연의(唐书志传通俗演义=당서연의)》의 등장인물로, 당태종이 동쪽(고려)을 정벌할 당시 작가 웅대목(熊大木=웅종곡)이 허구로 쓴 안시성주의 이름이다. 한국인들을 낚아보자.


16세기말, 조선반도에 전입했으며, 조선인들은 그 이름을 "당태종중전묘목(唐太宗中箭眇目,당태종이 화살맞아 애꾸가 됨)"이란 고유의 설화와 합쳐 퍼뜨렸다.


한국어(韩语中)에는 한자(汉字)에 대한 두음법칙(头音规则)이 있기 때문에, “梁”을 'Yang'으로 발음하고, 고로 퍼지는 과정에서 “梁万春” 의 한자 표기법은 “杨万春”으로 변해갔으며, 둘을 섞어쓴다. (한국어로 '양만춘'이라 쓰고, Yang Manchun이라 읽는다.)


근대 애국계몽운동과 사상가 신채호(申采浩) 등의 선전 후에 양만춘(杨(梁)万春)은 조선반도의 민족영웅으로 널리 알려졌고, 한국 구축함 이름에도 사용되었다.


결론 : 응~ 니들 다 낚였어


그렇다. 우린 여태까지 명나라 시대 소설 《당서연의》에 낚인 것이었다.


바이두 백과에 의하면 저자인 웅종곡의 생몰년은 1506년~1578년이니 '양만춘'의 이름이 처음 나온 건 16세기.


그러니까 과정을 따져보면 웅종곡이 당 태종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쓰던 중, 고구려 침공의 한 과정인 안시성 전투 부분를 다루게 됐는데 사서를 아무리 뒤져도 적장인 안시성주의 이름이 나오지 않자 그냥 '양만춘'이란 가공인물을 만들어냈다.


이것이 중국인들에게 양만춘이란 이름이 알려진 계기가 되었고 이를 전해들은 조선인들도 "아!! 이런 훌륭한 분을 우리가 미처 몰랐다니!!" 하며 양만춘으로 계속 기록해오다 오늘날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뭐 이런...


이건 무슨 이순신이 이름을 잃고 일본 소설가 지어준 가명으로 현대에 내려오는 꼴이랑 뭐가 다른 건지...

이래놓고 좋다고 양만춘이란 이름을 오늘날까지 써먹는 건 대체 무슨 당당함인건지 모르겠다.


드라마 <대조영>에서 양만춘은 고구려 대장군 + 요동 전선 총사령관 + 연개소문과 죽마고우란 설정으로 나온다, 심지어 주인공인 '대조영'의 이름까지 직접 지어주며 그의 정신적 지주로 활약한다.


이 우스워보이는 설정은 그가 단순히 안시성주란 사실을 넘어 고구려의 영웅이라는 상징적 인물로까지 발돋움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씁쓸하지만 소설에 낚이며 지내온 그 세월과 기록, 연구도 이젠 '양만춘 사(史)'라는 '하나의 역사'가 돼버렸다.

마치 소설 《삼국지연의》가 대박을 치자 사람들이 정사가 아닌 연의를 기준으로 수백년을 보낸 것처럼 말이다.


어떠한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선행연구도 연구사가 되듯이, 안시성주의 이름을 되찾고 안시성 전투를 연구하는 과정을 연구사로 본다면 이젠 400년이 넘는 그 긴 시간도 하나의 역사로 봐도 좋지 않을까.



양만춘이 아니라 안시성주


어쨌든 안시성주의 이름은 '양만춘'이 아니었다. 이름을 추적할만한 방법도 없으니 김부식이 그러했듯 탄식만 해야할 듯 하다.


그러나 '양만춘'이란 이름은 이미 캐릭터화되어 현대 한국의 창작물에서 다양하게 재생산되고 있으며, 조선시대에 그러했듯 오늘날에도 진위여부에 상관없이 그 이름 자체가 정사에 가깝게 굳어져버렸다.


당 태종을 물리친 전설의 영웅, 안시성주.

자신의 이름을 잃어버린채 한낱 중국인 소설가 지어준 가명으로 재탄생하여 영웅으로 추앙받는 이 현실을 그는 과연 어떻게 받아들일지...


중국인이 붙인 '양만춘'이란 가명을 쓰는 것보다 '안시성주'라는 직책으로 부르는 것이 이 분을 진정으로 기리는 방법이 아닐까.



  1. 고려사 > 卷二十五 > 世家 卷第二十五 > 元宗 元年 > 3월 > 중국 남방 행재소에서 몽고 황제가 왕을 후대하다 [본문으로]
  2. 삼국사기 卷第二十一 髙句麗本紀 第九 > 보장왕(寶藏王) > 논하여 말하다() [본문으로]
  3. 길공구 님의 블로그 참고 : https://blog.naver.com/gil092003/220699273406 [본문으로]
  4. 링크엔 없지만 박지원도 자신의 저서 <열하일기>에서 "안시성주 양만춘이 당태종의 눈을쏘아 맞히므로, 태종이 양만춘에게 비단 백 필을 내려 양만춘이 제 임금을 위해 성을 굳게 지킨 것을 칭찬하였다."라고 기록하였다. [본문으로]
  5. 남재철, 安市城主의 姓名 ‘양만춘’ 考證(Ⅰ) - 姓名의 出處 樣相 檢討를 中心으로 - A Historical Investigation of the Name Yang, Man-chun, Lord of Ansi-Fortress (Ⅰ) - Focusing on the Origin of the Name -, 2014, 초록 中에서 [본문으로]
  6. 링크 :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1916004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