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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민석 씨 이 분 정말 심각한 분이네

박신혜 2018. 9. 22. 19:13

니 논리를 위해 멀쩡한 사람 병신 만들어도 됨?

당신 정말 역사 공부하는 사람 맞음?


설민석 씨 헛소리는 진짜 한숨만 나올 지경이네


발성 좋고 연기도 잘해서 필요에 따라 직접 그 인물을 흉내내는 등 강사로서의 전달력은 분명 뛰어나고 단순명쾌한 설명 덕분에 이해도 쉽고 그 덕분에 역사에 대한 관심도 불러일으키는 공로도 있고...그래 과장도 할 수 있고, 다 좋은데 대체 왜 본인의 원활한 설명을 위해서 무고한 피해자들을 만들어내는지 모르겠다.


●민족대표 33인을 룸사롱 갔네 마담하고 놀았네 낮술 먹었네 라며 이상한 사람들로 만들지 않나.

●33인 대부분이 1920년대 후 친일파로 변절했다지 않나.

●임진왜란의 unsung hero 김성일이 전쟁은 없다고 한 진짜 이유를 날조해서 나라보다 당파를 우선시하는 매국노로 만들지 않나.

●조선엔 군대가 없다는 정신나간 소리를 지껄이지 않나.

이젠 신라까지...? 근데 신라 욕 안하면 한국인이 아니잖아


이 분의 문제를 몇 가지 나열해보자면

1. 사극에서나 나올법한 유치한 선악 이분법

2. 당연히 조선까

3. 그놈의 당쟁 당쟁...뭔 식민사관도 아니고

4. 우리 민족은 무조건 피해자 ㅠㅠ 무조건 불쌍해 ㅠㅠ

5. 빠지지 않는 민족주의, 감성팔이


'돈 많고 인기 많으니까 내 맘대로 칼춤춰도 돼' 뭐 이건가


전공자가 아니라서 무시하는 게 아닙니다. 상술했듯 능력과 공로는 분명 있는 분입니다. 하지만 그와 함께 커지는 부작용이 분명 있다는 겁니다.


이 분 추종자들이 꼭 하는 말, "전공자면 다냐?" 물론 아니어도 강의할 수 있습니다. 양념도 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교육자의 위치에 있는 분이라면 옳은 설명을 해줘야할 거 아닙니까. 방향이 틀렸어요.


얼마 전에 하셨던 안시성 강의도 들어봤는데 역시 본인 스타일대로 잘(?) 하셨습니다만...여전히 고질적인 문제에서 탈피하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고구려가 동북아 최강 ㅋㅋㅋ 그래 딱 요 정도 과장이면 그래도 괜찮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다음에 "당나라에게 고구려는 반드시 넘어야할 산"이라고 말하는데

좀 피식했지만 여당전쟁은 '한무제 병'에 걸린 당태종이 어느 정도 의도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납득은 가는 설명이었습니다.


헌데 문제는 여기입니다.


"연개소문이 쿠데타를 일으키자 안시성은 그에게 저항했고, 빡친 연개소문이 안시성을 공격했다."


영화에서는 이 설을 채용했는데요. 강사가 이걸 정설인 것 마냥 말하면 되나요.

이 설의 근거가 되는 사료는 딱 하나, 당 태종의 발언입니다.


내가 들으니 안시성은 성이 험하고 병력이 정예註 085이며, 그 성주가 재능과 용기가 있어 막리지의 난註 086에도 성을 지키고 항복하지 않아, 막리지가 이를 공격하였으나 함락시킬 수 없어 그에게 주었다.(후략)[각주:1]

그렇습니다. '내가 들으니'...바로 카더라 통신입니다. 저것 외에 연개소문과 안시성주가 갈등을 빚었음을 보여주는 증명사료는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1. 막리지와 안시성주랑 싸웠다는 말을 들었다.

2. 막리지와 안시성주가 싸움


이게 같습니까?

물론 그가 연개소문 정권에 처음부터 협력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정말로 그러한 소문을 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역시 알 길이 없죠. 무엇보다 그 소문이 진짜인지, 당태종의 언플인지, 진위여부를 모르잖아요.


심지어 영화에서는 이 설을 채용했다죠? 국가의 존망을 건 전투를 앞두고 정치성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그냥 냅둔다? 주필산에서 참패한 구원군은 유령부대인가요? 안시성은 독립국인가요? ㅋㅋㅋ


정말 재밌어보인다고 해서 사람 하나 병신 만드는 감독의 정신머리가 궁금합니다.

안시성을 비롯한 천리장성 방어선이 뚫리면 그게 연개소문에게 좋은 일입니까?

여당전쟁 자체가 연개소문 정권에겐 목숨을 걸고 막아야하는 위기인데 안시성을 버리고 평양에서 막아요? 미쳤습니까? 고증에 매달리는 건 아니지만 초딩도 코웃음칠 무리수 각본을 자랑스럽게 내놓은 감독의 멍청함이 우습네요.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했나요. 당나라는 안시성 패배를 자세히 기록 안 함."


날조 좀 하지 마세요. 진짜. 승자의 기록 함부로 운운하지 마십시오. 무슨 페미도 아니고 거의 만병통치약급으로 써먹네.

○ [貞觀 19년(645)]8월에 安市城 동쪽으로 陣營을 옮겨 李勣이 드디어 安市를 공격하였는데,註 107 延壽 등 항복한 무리를 옹위하여 성 밑에 陣을 치고 그들을 불러내었다. 城안 사람들은 꼼짝도 하지 않고 굳게 지키며, 太宗의 깃발을 볼 때마다 반드시 城에 올라가 북치고 소리지르며 저항하였다.
太宗이 [이를 보고] 매우 노여워하자, 李勣은,
“[城을] 함락하는 날에 남자는 다 죽여 버리기 바랍니다.”
하였다. 城안에서 이 말을 듣고 사람들이 모두 죽음을 무릅쓰고 싸웠다. 이에 江夏王 道宗을 시켜 土山을 쌓아 城의 동남쪽 모퉁이를 공격하였다. 高[句]麗도 埤城에다 雉堞을 증설하여 저항하였다. 李勣이 그 서쪽을 공격하여 抛石과 撞車로 城樓와 雉堞을 무너뜨렸다. 城에서는 그것이 무너지는대로 곧 木柵을 세웠다.

道宗이 나뭇가지로 흙덩이를 쌓아 올려 土山을 만들고, 그 중간에 다섯갈래의 길을 내어 나무를 걸치고 그 위를 흙으로 덮었다. 밤낮을 쉬지 않으며 [쌓아] 점점 城으로 육박하였다. 道宗은 果毅都尉 傅伏愛를 보내어 隊兵을 거느리고 山頂에서 적을 방어하게 하였는데, 土山이 자연 높아져서 그 城을 밀어내니 城이 무너졌다. 마침 伏愛가 사사로이 소관 부서를 떠나 있었으므로, 高[句]麗 군사 1백명이 무너진 城 틈으로 싸움을 벌였다. 드디어 土山을 점거하여 참호를 파서 [길을] 끊은 다음, 불을 놓고 방패를 들러쳐서 방어를 굳혔다. 이에 太宗은 크게 노하여 伏愛의 목을 베어 [전군에] 돌렸다. 모든 장수들에게 명하여 城을 쳐부수게 하였으나, 사흘동안 싸워도 이기지 못하였다.[각주:2]


○ 太宗은 遼東의 창고에 軍糧이 거의 바닥이 나고, 士卒들이 추위와 동상에 시달리자, 이에 班師를 명하였다. 그 城을 지날 때 城안에서는 일제히 소리를 죽이고 깃발을 눕혔으며, 城主註 108는 城위에 올라와 손을 모아 절을 하며 하직하였다. 太宗은 그들이 [성을] 굳게 지킨 것을 가상히 여겨 비단 1백필을 내려 주고, 임금을 섬기는 절의를 격려하였다.註 109[각주:3]
○ 太宗이 [李]勣과 공격할 방법을 논의하였다. 太宗이,
“내가 들으니 安市[城]은 지세가 험하고 무리들이 사나워 莫離支가 공격하였지만 능히 이기지 못하였다고 한다. 그러므로 安市城은 그대로 두자. 建安[城]註 260은 險絶함을 믿고 있는데, 군량은 많으나 군사가 적으므로, 만약 불의에 나아가 친다면 서로 구원해 주지 못할 것이다. 建安[城]을 차지하면 安市[城]은 우리 뱃속에 있게 될 것이다.”
라고 하자, [李]勣은,
“그렇지 않습니다. 遼東에 군량을 쌓아 두고 서쪽으로 建安[城]을 친다면, 적들이 장차 우리의 歸路를 막을 것이므로 安市[城]을 먼저 치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하였다. 이에 太宗은 ‘좋다’ 하고, 드디어 安市城을 공격하였는데, 함락시킬 수 없었다.
[高]延壽와 [高]惠眞이,
“烏骨城註 261의 傉薩은 이미 늙었으므로 아침에 치면 저녁에 함락시킬 수 있습니다. 烏骨[城]을 탈취한다면 곧 平壤도 탈취할 수 있을 것입니다.”
라는 계책을 냈다. 또 여러 신하들도 張亮의 군대가 沙城에 있으니 불러 온다면 하룻밤에 도착할 것이요, 만약 烏骨[城]을 탈취한다면 鴨淥江을 건너 그들의 심장부를 죌 수 있으므로, 이것은 좋은 계책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无忌가,
“天子가 군사를 움직임에 있어 요행수는 쓰지 않는다. 安市[城]의 십만 무리가 우리 뒤에 있으니,註 262 그들을 먼저 쳐부수고 이어서 남으로 진주하는 것이 만전의 형세이다.”

하므로, 그만두었다.[각주:4]

이거 찾는데 1분도 안 걸렸습니다. 당나라가 나몰라라 한 거 맞습니까?

당나라가 기록을 대충 갈겼는데 후대에 그 기록은 어떻게 전해졌습니까?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입니다. 지우긴 뭘 지워요. 음모론 퍼뜨리지 마세요.

양만춘은 16세기 명나라 소설 《당서연의》에 처음 등장하는 가상인물입니다. 신라 시대에 무슨 양만춘이란 이름이 있어요.


김부식이 "영웅 당태종을 물리친 이런 범상치 않은 호걸의 이름을 모르다니. 안타깝다."[각주:5] 라고 탄식했는데 이게 신라 잘못입니까? 기승전신라로 가나요? 암요암요. 신라와 조선은 존재하지 말았어야할 우리 역사의 수치죠.


송준길보다 윤근수의 《월정집》이 더 빠릅니다.

이 발언 뒤에 현종이 "어찌 앎?" 이라고 묻자, 송준길이 "윤근수가 중국 조정에서 들었다네요."

라고 답합니다.


자 여기까지 살펴봤는데 저 같은 역알못 눈에도 이렇게 허점이 숭숭 보이는데 자기 인생 걸고 열심히 하시는 분들 눈에 이 분이 어떻게 보일지는 불보듯 뻔하겠죠?


왜 답을 정해놓고 인물이나 사건을 그 틀에 억지로 껴맞추고 교훈을 억지로 짜내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역사에서 교훈을 찾는 건 좋은데 선악이나 유용성의 문제가 아니라 해당인물이 왜 이런 생각을 했는지, 인과관계가 왜 이렇게 형성됐는지를 분석하셔야죠.


물론 학생들한테 그걸 설명하라는 게 아닙니다. 다만 본인이 그걸 연구하셔서 강의에 녹여내셔야죠. 그것도 아니라면 실패자, 실수한 사람들을 무조건 나쁜 놈, 쓸모없는 놈 이렇게 만들진 마셔야죠.


조선이 군대가 없습니까? 이순신 빼고 모든 양반관리들은 병신입니까? 김성일이 당쟁에서 지기 싫어서 개소리한겁니까? 어떻게 선생 직함달고 이런 설명을 할 수 있습니까?


이 분도 문제지만 이 분의 광빠들도 문제입니다. 누군가 설씨의 문제점을 지적하면 추종자들 우르르 몰려와서 니가 뭐 아냐. 설씨가 뭘 잘못했냐 식...


솔직히 저들이 페미 세력이나 자기 연예인 무조건 감싸도는 빠순이들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습니다.


하기사 강력한 지지기반이 있으니 칼춤도 출 수 있는 거겠지.

이덕일도 추종자가 생기는 판에 설민석 씨는 그나마 양반이려나요.


영화, 드라마 찍는 놈들은 재미를 위해 왜곡 좀 하면 어떠냐

강사는 이해를 돕기 위해 날조 좀 하면 어떠냐


거의 이 수준이네요. 적당한 과장은 이해할 수 있고 또 어쩔 수 없이 해야하는 경우는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그게 합리화되더니 이젠 그에 대한 반성조차 없는 게 현 실태네요. 참 안타깝습니다.



  1. 삼국사기 卷第二十一 髙句麗本紀 第九 > 보장왕(寶藏王) > 四年 당군이 안시성 전투에서 패하여 돌아가다(0645년 (음)) [본문으로]
  2. 舊唐書(1) > 東夷列傳 > 高句麗 [본문으로]
  3. 舊唐書(1) > 東夷列傳 > 高句麗 [본문으로]
  4. 新唐書(1) > 東夷列傳 > 高句麗 > [본문으로]
  5. 삼국사기 卷第二十一 髙句麗本紀 第九 > 보장왕(寶藏王) > 논하여 말하다() [본문으로]